삼행시- 자화상(할배생각) /김대근
할배생각 /김대근
자빗간* 비료포대 두어장 내어밀면
화롯불 누글~녹여 경단처럼 만든 구슬
상기된 내 뺨 감아안던 까끌하던 손
자진모리 장단의 세월 흐르고서야
화로에 녹은 비닐, 그 뜨거움 알았다
상여꾼 상엿소리 틀린것 하나 없었다
"자식손자 많다한들 저승길 택도없네
화초장 담긴 재물 단 한푼도 어림없네"
상갓집 문상 간 날, 할배 생각에 울다
*자빗간: 시골집에 탈것이나 물건을 넣어 두던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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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면 항상 가야만 하는 줄 알았던 외가(外家)
시골아이들과의 구슬치기에서 나는 항상 그들의 호구노릇을 해야만 했다.
일부러 그 짓을 한것은 아니고 실력이 늘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구슬을 다 읽고 시무룩한 얼굴로 들어가면 외할배는
"근아! 저기 고방(庫房)에 비료포대 가져 오너라" 하고 말씀하신다.
자빗간이라 부르는 작은 창고에는 예전에 가마를 보관하던 곳이란다.
자빗간이란게 여간 부자여서는 있을 수 없으므로 우리 외할배를 밀양에서는
내노라하는 한량으로 만든 증거이기도 했다.
그 작은 고방庫房에는 두터운 비닐로 반든 비료포대가 많았다.
비료포대라도 버리는 법이 없는 것이 시골생활이니 제법 부농이던 외가에서도
차곡차곡 쟁여놓은 비료포대가 한 키 높이는 되었다.
외할배는 가위로 지금의 A4 정도의 크기로 자른 다음에 화롯불위에 놓는다.
금방 비닐은 누글누글해지는데 외할배는 손에 침을 탁~탁~ 뱉고는 그 누글해진
비닐을 올리고 경단을 빚듯이 구슬을 빗어 내셨다.
밤이 이슥하도록 비닐포대 2장은 마흔개쯤의 구슬이 되었다.
작업을 다 마친 외할배는 싱글거리는 나의 뺨을 까끌한 손바닥으로 어루만지곤
허허~~ 웃으시곤 했다.
마흔쯤의 나이가 되었을때 그때 생각이 나서 딸래미들에게 비닐로 구슬을 만들어
주겠노라 호기를 부렸다가 손바닥이 며칠 얼얼할 정도로 데이고 말았다.
며칠전에 상갓집에 다녀왔다.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아들과 집을 나가버린 며느리를
대신해서 손주를 키워온 분이라고 한다. 할아버지를 잃어버린 지인知人은 너무 섦게
울어 제대로 문상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외할배 생각이 났다. 꽃상여에 태워져 외가의 과수원 감밭으로 가시던 그날,
고개넘어 마을에서 불러운 상여꾼의 상엿소리 생각도 났다.
올 해를 넘기기 전에 천하 없어도 외할배 산소에 한번 들러야 겠다.